글과 이야기(Writing and Stories)

은의 길을 걸으며

나타나엘 2025. 12. 17. 20:04

이길을 걷겠다고 두려움과 설래임으로
마드리드를 경유해 세비아로 온지가 엇그제 같은데,
이제 산티아고까지 약45km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앞으로 3일만 걸으면
이번 산티아고 은의길 1,000km라는 길고 긴 길이 끝입니다.
43일 동안 955km를 걸어온 샘이지요.
오래 걸어서인지 몸은 어느새 걷는데 잘 맞추어져 있는 느낌 입니다.
초반부터 양쪽발가락 물집과 발톱이 괴로움을 주더니 초반을 벗어나니 발목과 무릅이 조금씩 신호를 보내고
언제 부터인가는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 가더군요.
어제는 마지막으로 긴구간 29km를 05시35분 출발해서 6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1,000m 이상 높은 산을 세개나 넘고 더운 한낮 땡볕에 올라가도 또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가파른 언덕길만 계속 나타나고
배낭은 등과 어깨를 짖누르며 매달려 내 발걸음을 붙잡던 그 길이 지금 돌이켜 보면 마치 내가 살아온 인생길 같다는 생각도 됩니다.
60세가 넘어 지나온 인생길을 돌이켜보면 많은 고난과 시련과 기쁨이 추억으로 남아 여물어 있듯이 지나온 길속에도 그와 같은 시간들이었던 것같습니다.
때로는
왜 이길을 걷는 걸까?
하는 질문도 수도없이 많이 했었지요.
아들은 엄마에게 걸을 만큼 걸었으니 좀 쉬시며 여행이나 하라고 걱정되는 말을 하지만,
이 길속에서ㅡ하늘. 구름. 꽃. 밀밭.포도밭. 풀들이 이야기를 걸어 오며  마음속에 넉넉함과 풍족함으로 참 좋음을 새겨 놓습니다.
그리고 짖게 풍겨오는 인간미 냄새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무거운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길위의 친구들을 만나러
또 나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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