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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은 오 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미국 문단에 등단한 줌파 라히리의 첫소설집이다. 미국인의 정체성이 아닌 미국에 사는 사람의 정체성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토박이로 자란 그의 경계적인 위치에서 미국인이라는 말도, 인도인이라는 말도 어색한 인간 줌파 라히리의 의구심 가득한 시선이 담담한 필체로 쓰여 졌다. 이 책은 아이를 사산한 부부 사이, 속한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말을 쓰는 지인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불륜관계의 연인 사이 등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 사이에는 서로 인지하지 못한 상처가 있고, 작가는 이들 사이에서, 독자와의 사이에서 ‘통역사’역할을 자처하였다. 또한, 각 작품은 특정 화자의..

책 (Book read) 2024.05.10

시장과 전장 ㅡ 박경리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선보인 전쟁문학 『시장과 전장』. 전쟁문학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박경리는 이 소설로 1965년 제2회 여류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와서야 가능했던 6ㆍ25전쟁의 객관화를 시도하며, 1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작가가 나름대로 해석한 전쟁을 이야기한다.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을,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의 시각과 전쟁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시각에서 동시에 그려냈다. 이 소설은 기석 일가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을 지영과 기훈의 시점을 통해 조명하는데,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서로 등을 맞대고 움직이며 흘러가는 전장과 시장. 지영을 통해서는 전장에서의 민중들의 애환을, 기훈을 통해서는 이념으로 인한 전쟁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책 (Book read) 2024.05.06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ㅡ 향봉스님

1980년대 법정 스님, 오현 스님과 함께 『사랑하며 용서하며』로 필명을 드날렸던 향봉 스님이 우리 앞에 다시금 ‘산골 노승의 글쓰기’를 내놓았다. 향봉 스님은 잊혀진 스님이다. 젊은 시절 한때, 세상 무서울 게 없던 시절도 있었다. 불교계 권력의 실세 역할도 해보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뒤늦게 철이 들어’, 마흔 무렵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15년간 인도와 네팔, 티베트, 중국을 떠돌며 구도행을 이어갔다. 이후 돌아와 20년째 익산 미륵산 사자암에 머무르며, 홀로 밥 지어 먹고, 글 쓰고, 산책하며 산다. 그렇게 70대 중반의 노승이 되었다. 향봉 스님의 글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담백하지만 맛깔스럽다. 유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그런..

책 (Book read) 2024.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