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영화감독의 에세이『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은 칠곡 할머니들을 3년여 동안 만나면서 느낀 것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나이듦이라는 주제를 때론 유쾌하면서도 경쾌하게, 때론 고요하면서도 따뜻하게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시트콤처럼 재미난 에피소드에, 할머니들의 단순하면서도 감동적인 시를 더하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일상의 한복판에서 재밌게 나이 드는 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저자는 망설임 없이 고백한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찍으면서 만난 칠곡 할머니들 덕분에 나이듦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이 조금씩 녹아내렸다고. 할머니들의 속도에 맞추니 시간의 오묘함과 느림의 즐거움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고.
저자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이분들은 왜 이리 생기가 넘치고 즐거울까? 나이 들어 많이 쇠약해진 팔구십 대 할머니들인데, 기운도 팔팔하고 서로 모였다 하면 소녀처럼 시도 때도 없이 까르르 웃는다. 무엇이 이들을 재밌게 나이 들어가게 했던 것일까. 저자가 할머니들의 삶에서 눈여겨본 감정은 설렘이다. 칠곡 할머니들은 오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오늘의 일용할 설렘을 찾아다니며 계속 이동하는 할머니들이었던 것. 하루하루 설레는 삶을 산다면, 나이 드는 게 무슨 대수일까.
한 번뿐인 인생, 매일매일 재밌게 살아가기 위해 꼭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단조로운 할머니들의 일상에 눈에 띄는 변화를 몰고 온 것은 바로 한글이었다. 가난해서, 여자라서 한글을 배우지 못한 칠곡 할머니들은 문해학교의 학생이 되면서부터 설렘이라는 감정에 매일같이 흠뻑 빠지기 시작한다. 고마 사는 기, 배우는 기 와 이리 재밌노! 인생 팔십 줄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칠곡 할머니들! 문해학교 학생이 된 할머니들은 아침 일찍 눈뜨자마자 마을회관을 찾아가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느릿느릿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동네 간판들을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글을 몰라 서러웠던 마음은 한편에 접어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기도 하고, 자식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은행에 가서 업무도 보고 사인도 해보는 등 읽고 쓰는 재미를 한껏 즐긴다. 손주와 마주 앉아 책도 읽고, 식당 메뉴판을 보며 음식도 주문하고, 시로 마음도 표현한다. 또 도시락을 싸들고 뒷산으로 소풍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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