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Book read)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하재영

나타나엘 2021. 8. 12. 17:30
폭주하는 이 시대를 향한 질문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혼돈의 팬데믹 시대를 맞아 집이 갖는 의미는 더욱 각별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집이라는 부동산을 향한 욕망과 그 욕망을 부추기는 행태는 수많은 이들에게 좌절과 불안을 가중시킨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그런 혼란의 시대에 집이 갖는 본질적 가치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경제적인 부침과 함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극과 극의 주거 형태들을 경험한 한 여성의 자전적 이야기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집과 개인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는 향수를, 누군가는 지금의 현실을 만날 것이다.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과거와 현재로 떠나게 하는 힘은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이를 뒷받침하는 탁월한 문장력에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부합하는 언어로 집을 둘러싼 기억의 서사를 섬세히 직조해나간다. 단편소설로 등단하고 두 권의 소설책을 출간하기도 한 저자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생계를 감당하는 글쓰기”를 하며 “집필 노동자”로 살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나 남루한 현실을 감추려 애쓰던 기억을 담담히 써내려간 글은 인간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저자는 그가 살아온 수십 개의 방이 그의 정체성과 욕망을 형성했음을 고백한다. 이는 누구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안에는 그가 살아온 집이 들어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독자는 내 안에는 어떤 집이 들었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 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를 가늠해본 문학적 시도!

그의 글은 집을 통해 본 한 여성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저자가 ‘자기만의 방’, 온전한 ‘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다. 그것은 어머니 세대로 대표되는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으로부터 출발한다. 유년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세 삼촌을 포함한 대가족의 살림을 홀로 전담한 그의 엄마는 집에서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아내-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조차 불리지 못했음을 저자는 가슴 아프게 깨닫는다.

“북성로 집에 살던 어느 날, 내가 거실과 주방에 없는 엄마를 찾으러 다니며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엄마의 자리, 엄마의 일이 다른 어딘가,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_142쪽

그 깨달음은 ‘자기만의 방’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에게 있어 ‘자기만의 방’이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닌,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다. 단순히 서재를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간에서 “나의 서사를 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나만의 자리’를 향한 오랜 애착은 마침내 답을 찾은 듯 보인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아직 자기의 자리를 갖지 못한 많은 이들을 부추긴다. 에세이스트 김하나가 발문에서 쓴 것처럼 “각자의 안에는 그가 살아온 집이 있”고,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꺼내놓을 때 다른 이들의 삶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